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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센

​해바라기

88년도를 선택하기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족과 직업, 과학기술의 발전까지 없어서 불편한 것이 많다고 느꼈었다. 18년도에서 살아가기로 결정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미제사건에서 손을 떼는 일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그때는 굳게 믿었다. 그러나 88년도의 사람들과 너무나 많은 일상을 공유했고, 그들에게 의지하며 사아가고 있었으며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회적인 동물, 인간. 깊어진 관계를 갑자기 끊은 한태주에게 환각은 일상이 되었다.

 

 

 

_서울놈-!

 

“어,, 강계장님..?”

 

_아니, 밥도 안 먹고 만날 술만 마시니깐 몸이 상하지!

 

“계장님.. 거기 계세요..?”

 

 

 

태주는 소리를 좇아 걸어갔다. 소리의 끝은 존재하지 않았고,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작지만 따뜻했던 88년도와 넓고 추운 18년도의 괴리감은 한태주를 좀먹었다.

 

 

 

_한반장님! 오늘 점심메뉴 뭐로 할까요?

 

“조경장?”

 

_얌마, 반장님 어제 술드셨자너~~! 용기표 해장국 팍팍 끓여드릴게요, 사택으로 가시죠!

 

“이형사? 다들 거기 있는 거 맞아요?”

 

_음음 그렇지. 해장국은 용기해장국.

 

“계장님! 거기 계신 거 맞냐구요!!”

 

 

 

빠르게 뛰어간 부엌은 싸늘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도 기다리는 온기는, 아무데도 없었다. 넓은 거실의 공백은 외로움의 크기가 되어 한태주를 괴롭혔다. 외로움은 태주를 병들게 했고, 무기력의 공간에서 침전되게 했다. 태주가 환각에 먹힐수록 외로움은 선명해져 갔다. 태주는 회복 할 의지도, 힘도 없었다.

 

 

 

_반장님-!

또다. 울먹이던 그 목소리. 마지막까지 울면서 한태주를 찾던 목소리. 꼭 3반의 환각을 본 날에는 윤순경의 목소리가 울렸다.

 

_반장님,, 저희 아직 살아있어요,,

 

“아니에요,, 윤순경은 꿈 속 사람이라고요..”

 

_그런 말 하지 마세요! 뛰잖아요, 반장님도 느끼시잖아요, 심장소리-!

 

 

 

두근, 두근, 두근 박동소리가 태주를 감싼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직 심장 박동 소리만 들려온다. 두근, 두근 귓가를 찢을 듯 울려온다. 그만. 제발 그만.. 울면서 잠에서 깼다.

 

 

끼니를 거를 때마다, 잠을 잘 못 잘 때마다 자신을 챙겨주러 오는 3반 사람들이 보였다. 오늘 출근이 늦으시다며 집 앞으로 걸어오는 윤나영이, 틱틱대며 연탄을 날라오는 이용기가, 사건일지를 들고 설명 부탁드린다며 수줍어하는 조남식이,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침대를 차지하고 앉아서 반겨주는 강동철까지. 꿈이라는 걸 알았다. 모든 게 환각인 걸 알고 있다. 그러나 태주는 그들을 끊어내지 못했다. 자신이 건강하게 지낼수록 흐릿해져가는 잔상들 때문에 더 몸을 혹사시켰다. 잠을 더 줄이고, 일을 더 늘리고.

 

 

점점 확신이 사라진다. 내가 과연 이 사람들 없이도 살 수 있을까?

 

허공에 물어보지만 답은 없다.

 

 

 

* * *

 

 

 

밥도 거르고 일하는 태주가 걱정된 어머니와 고모가 찾아왔다. 얼굴에 속상한 마음이 드러나는 고모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입을 뗀다. 저 괜찮아요. 아니 너도 참.. 너 이름 닮은 형사님이랑 닮아 가면 어떡해! 만날 말만 괜찮다! 얼굴은 다 상해서.. 아구...

 

 

 

“네?”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왜 생각을 못했지. 과거로 가서 얽혔던 사람이었다. 어린아이의 기억은 빠르게 휘발되지만 고모는 아니었다. 절박한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갔다. 고모 기억 하세요? 그때 형사님을??

 

 

 

“아유 그럼, 기억하지. 너랑 이름도 같으시고, 어머. 지금 보니 그때 형사님이랑 너 진짜 닮았다. 무슨 도플갱어..? 그거 같아!”

 

“그.. 같이 오신 다른 형사님들도 기억하세요? 순경도 한 분 계셨는데..!”

 

“그럼 순경님은 내가 똑똑히 기억하지. 그 분 덕분에 잡았는걸, 그 때 그 미친놈 어휴.”

 

“혹시 윤순경님 소식 들으신 거 있으세요? 아니면 다른 형사님들 소식이라도”

 

“이사한 뒤로는 간 적이 없으니깐.. 아, 조폭 패싸움에 말려서 신문에 난 적 있었어. 전원.. 사망이었지, 아마? 한반장님은 안 계시더라. 다시 서울로 올라가셨나?”

 

 

 

현실이었어. 허상이 아니었어. 그 사람들은 모두 존재하는 사람들이었어. 아, 난 살아있는 사람들을 허상 취급했구나. 그럼 난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고만 온 건가? 내가 돌아갔다면 살 수 있는 사람들이었구나. 날 사랑해준 사람들을 포기하고 왔구나. 날 믿어준 사람들을 믿지 못했구나.

 

 

상념에 빠진 태주를 부른 건 어머니였다. 태주야. 태주야? 아, 어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심각하게 해. 저는 절 믿어준 사람들을 죽게 내버려뒀어요. 차마 뱉지 못했다. 아니라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자신을 믿고 있는 사람에게 또 상처 줄 수 없었다. 아니, 입 밖으로 말이 나오면 인정하는 것 같았다. 상처받기 싫었다. 나는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구나. 치료해 줄 사람 없이 상처는 곪아갔다.

 

 

놀리기라도 하듯이 그 날부터 3반의 환각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몸을 더 혹사시켜도, 일을 쉬지 않고 해도 찾아오는 건 칠흑과도 같은 수면이었다. 퇴근하고 돌아와도, 아침에 늦잠을 자도, 일이 고되어도, 끼니를 챙기지 않아도, 아무리 허공에 이름을 불러 봐도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차라리 꿈이라도 꾸면 좋겠다.

 

 

아,

 

“여기가 꿈인 건가?”

 

 

그래 이렇게 잠에 들자. 나는 지금 꿈속에서 사는 거야.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자.

.

.

.

 

 

31일 새벽 02시 23분쯤, 서울시 다기동의 한 아파트에서 광역수사대강력1팀장 한모(36)경위가 약물 및 알코올 과다복용으로 인해 숨 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심의위는 “과다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로 인정 된다”며 순직 승인을 통지했습니다. 다음 뉴스…

 

 

 

 

 

 

해바라기

 

8월의 탄생화.

당신만을 기다림. 그리움.

휘센(@mat__zip) 

​HAPPY BIRTHDAY
HAN TAE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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