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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름달의그믐
8월. 하늘에선 해가 타오르고 지상에서는 가슴이 타는 정열의 달, 우린 그 때를 타오름달이라 불렀다.
타오름달의 그믐.
먹에 적셔진 듯한 검은 하늘에 달이 실처럼 제 존재를 알리는 새벽이, 커다란 이삭꽃이 이 세상에 처음으로 피게 된 시간이었다.
타오름달의 그믐에 태어난 아이는, 달의 사랑를 받고 해의 가호를 받았다. 그랬던 아이의 세상에서, 지상과 가슴에서 붉게 타올라야 할 해가 사라졌을 때, 타오름달은 그 이름을 잊고 아이의 세상에는 그믐조차 오지 못한 차가운 삭만이 검게 탄 채로 남아버렸다.
해를 잃어버리고, 달빛을 받지 못했기에 더는 청아하게 빛날 수 없는 제 백색의 빛을 이삭꽃은 제 가슴 속 깊이 묻어버렸다. 그리고선, 결국엔 온전한 지상을 벗어나 먼 곳으로 날아가 별똥별이 되었다.
지구에 들어서지 못하고, 달도 되지 못한 채 태양계 주위만을 겨우 공전하던 혜성은, 어느날 무언가에 홀린 듯이 푸른 별 지구 너머 그저 붉은 화성으로 날아갔다. 일정한 궤도를 돌던 혜성에게 화성의 중력장이 주는 느낌은 혜성을 혼란하게 만들었다. 혜성은, 제가 이삭꽃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
아차하면 튕겨져 멀리 날아갈듯한. 불완전한 화성의 중력은 우주의 주위만을 가벼이 돌아왔던 혜성에게는 가혹한 것이었다. 그 아찔함에 원래 화성 주위를 돌던 포브스와 부딪혀 이리저리 상처입었던 일도 허다했다.
혜성이 검은 제 속에서 무언가를 떠올렸던건, 그가 온전한 제 궤도를 겨우 조금씩 찾아낼 때였다. 화성이 조금씩 옆으로 비껴나며 보여냈던, 저 너머 지구의 은백색 달과, 그 뒤를 환히 비추는 태양이, 혜성의 몸을 덮고있던 절대 녹을 것 같지 않았던 영하 팔십 팔도의 얼음을 녹였다. 얼음이 녹아 주르륵 흘러내리는 물이 몸으로 설게, 아프게 스며들었다.
혜성은 아픔으로서 기억해냈다. 제가 이삭꽃이었다는 사실을, 태양과 달의 가호를 받았었던, 그러나 하루 아침에 태양을 잃어버리고 달빛조차 떠나보내어 결국 제 흰 빛까지 차갑고 두꺼운 얼음에 묻어버린 이삭꽃이란걸.
이삭꽃이 모든 것을 떠올려내고, 점점 제 흰 빛을 밖으로 드러낼 때, 위기가 찾아왔다. 저 멀리서 날아온, 예전의 저와 같아보이지만 저와는 본질이 다른 소행성이, 포브스와 자신을 세게 치고갔다. 이삭꽃은, 겨우 찾아낸 제 화성에서 멀리 멀어지고, 포브스는 점점 화성으로 낙하하려 하고 있었다.
이삭꽃은 그제야 깨달았다. 저를 이 곳 화성으로 불러낸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저 포브스였다는 것을. 이삭꽃은 그제야 알아차리고 설게 울었다. 어떻게든 저 포브스의 곁으로 다시 가서, 제 궤도를 찾고 이번엔 제가 포브스를 끌어당기려 이삭꽃은 제 한 몸을 희생했다. 날아오는 혜성과, 소행성을 맞으며 기꺼이 원래 제 궤도로 밀려났다. 화성으로 낙하하던 포브스가, 점점 그 속도가 늦춰지며 다시 제 궤도로 조금씩 되돌아왔다. 그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본 이삭꽃은 온전히 화성에 남아있기로, 그 어디에도 가지 않고 여기서 제 흰 빛을 피워내려 결심했다.
이삭꽃은, 제 모든 흰 빛을 피워내면서, 포브스 옆에서 데이모스란 이름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이제 데이모스는 태양처럼 붉은 화성의 가호를 받고, 포브스의 사랑을 받았다.
타오름달의 그믐은, 다시 제 이름의 의미를 온전히 찾아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반장님-한태주-, 생일 축하합니다~"
"한태주! 뭘 멍때리고 있어! 초 다 녹겠다 빨리 불어!"
"반장님 빨리요!"
"어어, 초 다 떨어지는데요! 반장님 빨리 부십쇼!"
"에헤이 거 참 빨리 붑시다! 벌써 초 다 떨어졌네!"
"큼, 큼. 한태주, 생일 축하한다. 네 생일을 옛 어른들은 타오름달의 그믐이라고 한다더라. 너는 커다란 이삭꽃이고. 근데 여기 왔을 때의 너는 어디서 뚝 떨어진 별똥별 같더라. 계속해서 주위를 맴돌고, 영 적응하지 못하고."
"....."
"근데 시간이 지나고, 어느 순간 네가 꽃으로 보이더라. 아주 조금씩, 피기 시작하는 그런 꽃 말야. 그러니까.."
"....네."
"....."
".....계장님.."
".....아우 몰라 몰라! 케이크나 먹자! 야 이게 읍내에서 제일 가는 빵집에서 장인이 한땀 한땀 만들어낸 케이크야! 너 비싼거다 이거? 나중에 우리 생일에 다 받아낼거야?"
태주야, 네가 늘 만개했으면 한다. 네 흰 빛깔을 잃지 않고, 활짝 핀 채로 모두에게 사랑받았으면 한다.
타오름달의 그믐에 피어난 이삭꽃아, 우리에게 와 주어서 고맙다.
생일 축하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랑받을 태주야.
D(@C6H6O3_C2H5O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