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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계절의 우리

투명한 스트로우를 타고 올라간 딸기에이드가 아이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광경을 태주는 말없이 바라봤다. 불어온 봄바람에 아이의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교복 위에 연분홍색 실로 반듯하게 박음질된 이름이 드러났다. 강수연. 태주는 문득 아이의 이름이 얼굴과 썩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아저씬 어떻게 찾았어?”
“길찾기 어플이요.”

대뜸 찾아와 ‘아저씨, 강동철이라는 사람 알아요?’ 하고 묻던 목소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투였다.

 

“날 왜 찾아왔는데?”

공원에 들어서고 줄곧 농구대 근처만 응시하던 아이의 시선이 그제야 태주에게 향했다. 이제야 원하던 질문을 들었다는 듯, 호기심이 어린 것도 같은 눈빛이었다.

 

“궁금해서요.”
“뭐가?”
“아빠가 찾아가보지도 못하면서 매일 들여다보는 그 주소에 누가 사는지요.”
“…….”

“뭐, 아빠 마음속에는 훨씬 더 오랫동안 살고 있었겠지만.”

마음속에 살고 있는 사람. 열다섯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에 태주는 입술을 지그시 씹었다. 그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지워지지 않고 얼룩진 채로 남아있는 눅눅한 미련을 지칭하는 표현인지 아이는 알고 있을까.

 

“우리 아빠 첫사랑이잖아요, 아저씨가.”

얼마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건지 지금까지 나눈 대화만으론 알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래서 그 진실을 말해줘도 되는 건지 또한 알 수 없었다. 첫사랑. 엄밀히 말하면 첫사랑은 아니었지. 그저 단순한 사실관계만을 짚어보며 태주는 제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 마셨다.

 

“다 알고 있어요. 아빠랑, 아저씨랑, 우리 엄마 얘기.”
“…….”

“그래서 아저씨한테 말해주고 싶었어요.”

태주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태주가 듣고 싶어하든 아니든 상관없다는 듯 조근조근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엄마랑 아빤 내가 여섯살 때 이혼했어요. 난 엄마랑 살고 싶었는데, 엄마가 날 그냥 아빠한테 주고 가버리더라구요.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
"저요, 엄마가 그때 아빠한테 한 말 아직도 기억나요.”
“…뭐라고 했는데?”
“내가 너랑 헤어져도… 넌 절대 걔 다시 못 만날 거야.”

제삼자가 들으면 힐끔거리기 충분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얼굴치고는 아이의 얼굴은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엄마는 내가 아빠한테 짐이 되길 바랬나봐요. 나 키우면서 아빠가 평생 죄책감 느끼면서 살라고.”

잠시 생각을 정리하려는 듯 아이는 다시 스트로우를 입에 물었다. 알갱이라도 씹는 모양인지 작은 입술이 오물오물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은 다 우리아빠 똑똑하다고 하는데요, 실은 울 아빠 되게 바보같아요. 술 취해서 들어오면 한태주, 태주야. 노랠 부르면서,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안다니까요? 나 어렸을 땐 우리 아빠 심심하면 사진 들여다봤어요. 대학교 졸업사진.”

저는 알지 못하는 그의 시간들. 알지 말았어야 할 비밀이야기를 들은 것처럼 가슴 한 쪽이 답답해져 태주는 아이가 더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아저씬 수연이가 왜 아저씰 찾아왔는지가 듣고싶어.”

그렇게 묻는 저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수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그의 눈과 아주 많이 닮았다, 고 태주는 생각했다.

“…우리 아빠 좀 만나 주세요.”

 

*

 

“유진 선배 애 가졌다면서요.”
“지우라고 했어.”
“…진짜 선배 애란 소리네 그럼.”

옥탑 평상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동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태주도 가방을 내리고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 태주는 평상 한쪽에 놓여있는 동철의 담배를 가져다 불을 붙였다. 내뱉은 연기가 꼭 하늘에 잔뜩 껴 있는 먹구름 같았다.

“유진 선배랑 가서 살아요.”
“…….”
“애가 무슨 죄예요. 사고는 둘이 쳤는데.”

날카롭게 가시가 돋친 말에 내내 바닥만 보고 있던 동철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태주를 바라봤다. 동철은 아무 말 없이 타들어가는 담뱃재를 톡 털어냈다. 초록색 방수처리제가 군데군데 벗겨진 옥상 바닥에는 그가 오기 전까지 동철이 피우고 버린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버려져 있었다.

“걔 나한테 아무것도 아니야.”
“유진 선배는 아닐 것 같은데.”
“한태주.”

“나한테 변명할 필요 없어요, 우리 헤어졌잖아. 근데 왜 굳이 설명하려고 해요.”

담배연기를 뱉으며 태주는 옅게 웃었다. 아니, 웃으려고 했다. 미세하게 떨리는 태주의 아랫입술을 눈치챈 동철이 한숨을 푹 내쉬고 물었다.

“근데 왜 떨어.”
“…니코틴 부족해서.”
“…….”
“…가요.”

마지막으로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태주는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동철은 일어나는 태주의 가방끈을 힘주어 움켜잡았다. 핏줄이 도드라지도록 쥐고 있는 손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태주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겨우 떼어내 목소리를 냈다.

“잘 살아요.”

그 말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가방끈을 움켜쥐고 있던 동철의 손이 맥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

 

근처 병원들이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약국도 따라서 한산해졌다. 카운터를 아르바이트생에게 맡겨두고 태주는 조제실 의자에 앉았다. 환자들의 처방전을 묶어놓은 파일 위에는 어제 수연이 주고 간 동철의 명함이 놓여있었다. 인성시 서부경찰서 강력3반 계장 강동철. 직함과 함께 딱딱한 글씨로 적혀있는 그 이름조차도 실로 오랜만이어서 태주는 물끄러미 그것을 들여다봤다. 자신도 학교를 도망치듯 떠나지 않았다면 그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었을런지도 몰랐다.

‘보고 싶은 거 다 아는데 자꾸 아닌 척 해요. 나 때문에….’

담담하게, 어른스럽게 말했어도 결국은 열다섯 살 아이였다. 부모의 이혼만으로도 충분히 상처일 나이. 예민한 만큼이나 예쁘고 사랑스러울 그 나이에 아이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았고 그로 인해 더 많이 상처입었을 터였다. 그 시절의 자신들에게서 끝내고자 했던 상처는 수 없는 세월을 돌고 돌았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선생님, 처방전이요.”

아르바이트생의 목소리에 상념으로부터 깨어난 태주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표기된 처방약을 빠르게 훑어 확인하던 태주의 시선이 환자의 이름에서 멈췄다. 그리고 태주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조제실을 나왔다.

“...”
“…”
“오랜만이다, 한태주.”

 

*

 

일부러 그럴 필요 없다는 동철의 말에도 태주는 부러 일찍 약국 문을 닫았다.

“술 한 잔 해야 하는데, 시간이 좀 이르네요. 선배 눈도 그렇고.”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어색한 기류가 그들 사이에도 흐르고 있었다. 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태주는 동철의 셔츠 카라 언저리에 시선을 뒀다.

“수연이 왔었지, 여기.”
“네.”
“…미안해. 곤란하게 해서.”
“괜찮아요.”
“혼 많이 냈어. 이젠 그런 일 없을 거야.”

그의 말에 태주가 푸스스 웃음을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 웃음에 동철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애아빠 다 됐네, 강동철 선배.”

옥상에 나란히 앉아 뻑뻑 담배만 피웠던 그날에서 멈췄던 기억이 빠르게 감겨 다시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스물 셋, 치기어렸던 그때보다 훨씬 깊어진 눈동자가 오롯이 태주를 바라봤다. 세월이 가는 동안 초탈했다고 생각했던 미련이 그 눈빛에 스물스물 고개를 드는 것만 같아 태주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예쁘더라고요. 이름도 예쁘고, 얼굴은 더 예쁘고.”
“…”
“선배 안 닮아서 다행인 것 같아요.”
“한태주.”
“좋겠네, 예쁜 딸도 있고.”
“…넌 이제 괜찮아?”

막 수저를 들던 태주가 고개를 들어 동철을 바라봤다. 어떤 의미의 안부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한껏 조심스러웠던 목소리와는 달리 태주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찌개를 한 술 떴다.

“괜찮아요.”
“미안하다. 못 가서.”
“벌써 몇 년 전인데요, 그게.”
“…….”
“아, 선배 제 결혼식 안 왔으면 와이프 얼굴 한번도 못 봤겠구나.”
“…그렇지.”
“진짜 예뻤어요. 우리 와이프.”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 어쩌지 못한 감정이 가득 밴 목소리였다. 반찬을 집어 드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동철이 저도 모르게 간지러운 눈가로 손을 가져갔다.

“만지지 마세요.”
“어?”
“덧납니다.”
“…….”
“근데 선배는 참 안 변했다, 그대론데요.”
“…많이 변했지. 우리 둘 다.”

시간이 흐른 만큼 벌어진 세월 사이의 괴리감.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변하고도 남음일 터였다.

 

*

 

“그냥 가요.”
“괜찮아. 가깝다며.”
“그래서 가라는 거예요. 주차비 많이 나와요.”

태주의 재촉에도 동철은 그저 피식 웃고 말 뿐이었다. 선선하게 부는 밤바람을 타고 가로수로 심어진 벚꽃 향기가 은은하게 퍼졌다.

“수연이 혼자 있을 거 아니예요. 가 봐요.”
“괜찮아 아직은.”
“…….”
“학원에 있을 시간이야. 너 들어가는 거 보고가면 딱 맞아.”

둘은 대답 없이 바닥만 보고 걸었다. 동철의 운동화와 비교되는 진한 태주의 흑갈색 구두가 속도를 맞춰 나란히 걷고 있었다.

“…유진 선배는 애 보러 자주 와요?”

동철의 발이 태주의 물음에 잠시 주춤했다. 땅거미가 내려앉았음에도 상가 거리는 여기저기 불을 밝힌 간판들 때문에 대낮만큼이나 밝았다.

“수연이가 무슨 얘기 해?”
“그럼 걔가 약 사러 여기까지 왔겠습니까.”
“…….”

“짐작하고 있잖아요, 무슨 말 했을지. 그래서 혼도 낸 거 아니예요?”

동철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다 얘기해주더라고요.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
“애어른 같아서 좀 미안했어요.”
“니가 왜.”
“그냥. 저 때문인 것 같아서.”
“너 때문 아니야.”

일정한 속도로 걸음을 옮기던 태주는 일순 걸음을 멈췄다. 그보다 몇발짝 더 걷고서야 태주는 뒤를 돌아봤다.

“너한테 부담주려고 찾아온 거 아니야, 한태주.”
“…….”
“정말이야.”
“왜 애한테 그런 걸 들키고 그래요. 사람 난처하게.”
“…미안하다.”

눈에 띄게 수그러드는 어깨에 태주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었다. 다시 발걸음을 떼는 태주를 동철이 보폭을 넓혀 따라잡았다.

“뭐 어떻게 하려고 찾아왔어도 우리 사이가 변하진 않을 거예요.”

아파트로 향하는 야트막한 언덕에 고요히 태주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대도 우린 똑같았을 거고요.”
“…….”
“어떻게 버려요. 그렇게 예쁜데.”

완곡한 거절의 표현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동철은 태주에게 제 마음을 전한 적이 없었다.

“정말 변하지 않았을 것 같아?”
“…….”
“내가… 니가 생각하는 그런 마음먹고 너 찾아왔다고 해도?”

잔잔한 수면 같던 삶은 실은 가장에 불과했다. 그저 아래 깊숙이 잠식시켜 놓았을 뿐. 물 위의 부표는 가벼운 물살에도 쉽게 흔들리지만, 깊은 물속에 수장된 배는 움직이지 않는다. 부러 건드리지 않는 이상 조금씩 부식되어 언젠간 그 흔적마저도 없어질 것이었다. 그러니 결국, 흔들렸다는 말이다. 지난 세월로 켜켜이 쌓아올린 벽은 아이의 등장만으로도 이미 금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눈앞의 동철이 그것을 막, 부수기 시작한 참이었다.

“저는 그날 옥상에서도 흔들렸어요.”

가로등 밑에서 태주는 동철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노란 불빛에 동철의 가라앉은 눈동자가 여과없이 드러났다.

“그럼 지금은?”

동철이 서 있던 자리에서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와 태주의 팔을 붙잡았다. 언제든 뿌리칠 수 있을 만한 악력이었다. 아니 애초에 잡히지 않을 수도 있었을 동작이었다. 한참을 그렇게 마주보고 서있다가 태주는 손을 들어 동철의 팔을 붙잡아 내렸다.

“집에 가서 약 챙겨먹어요. 아까 저녁 먹고 안 먹었잖습니까.”
“한태주.”
“안구결석은 한 번 생기면 몇 번이고 다시 생기니까 조심하고요. 아침 저녁으로 약 넣는 거 까먹지 말고, 인공눈물은 건조하다 싶으면 수시로 넣어줘야 해요.”

그 말을 끝으로 태주는 뒤돌아섰다. 가로등 밑으로 새카맣게 날벌레 떼가 모여 있었다. 벌레 타는 소리보다도 작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또 올게.”

어스름이 내린 거리의 풍광만큼이나 옅은 감정이 모호했다. 여러모로 알 수 없는 계절이었다.
 

더블유(#X)

​HAPPY BIRTHDAY
HAN TAE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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