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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삼

*이 글에서 동철과 태주는 연인사이입니다.

 

 

*이 글은 동철이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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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랬듯이 홀로 남아 자료를 둘러보다 시계를 힐끗 본 태주는 시침이 11시를 넘어가는 것을 보고는 서류를 덮었다. 아직 볼거 많이 남았는데.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던 태주는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몇개의 서류를 더 챙겨 강력계를 나섰다. 양손 가득히 서류를 들고 서 문을 열던 태주는 탄식을 내뱉었다.

 

"아..."

 

서 문을 열어젖히자 보이는 것은 대차게 쏟아지는 빗줄기였다. 아침에 비가 온다는 뉴스를 봤던것도 같고. 낭패였다. 태주는 머리를 긁적이다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뒤돌았다. 밤을 새야겠다고 작정을 한것이다. 그 때였다.

 

"빠앙--"

"어이 서울놈!! 빨리 타!!"

 

귀를 아프게 찌르는 클락션 소리, 그리고 뒤이은 익숙한 고함소리. 태주는 살짝 놀란듯한 얼굴로 자신을 마중나온 검은색 소형차를 바라보았다.

 

"야! 안 탈거야?!"

"아...네."

 

태주는 서류가 조금이라도 젖을세라 코트 속에 잘 품고서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을 뛰어 차에 뛰어들듯 탔다. 아직 상황파악을 못한 듯 얼굴이 어벙한 표정을 띄었다.

 

"어떻게 오셨,"

"어떻게 오긴 임마! 뭐, 좀 할 일이 있어서 왔다가 온 김에 너랑 가려고 한거지! 너 이새끼 왜이렇게 늦게나와? 너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줄 알았다 아주!!"

"그럼 올라오시지 왜 굳이."

"아무튼 얘는 한마디를 지려고 안들어요 아주. 됐다, 됐어. 빨랑 가자." 

"...네."

 

품 속에 넣어둔 서류를 꺼내 무릎에 올려놓으며 태주는 괜히 동철에게 시비를 걸었다. 태주는 알고있었다. 동철이 우산을 챙겼을리 없는 제 애인이 걱정되어 데리어 온거라는 걸 말이다. 창밖을 응시하는 얼굴에 슬쩍 웃음이 스쳤다.

 

/

 

"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가긴 어딜가? 삐리빠라뽕 해야지!!"

 

사택에 도착한 후 인사하는 태주를 쓱 지나쳐 들어가는 동철의 손에는 어느새 그가 제일 좋아하는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한 인성통닭과 소주 두 병이 들려있었다. 어쩐지, 너무 고분고분하게 데려다주더라니. 헛웃음을 짓는 태주에게 동철은 상큼한 윙크를 지어보였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태주의 눈 앞에는 이미 몇번 봐 익숙해진 풍경이 펼쳐져있었다. 흰티와 트렁크, 양말만을 걸친 계장님이 통닭을 뜯으며 티비를 보고 히히덕거리는, 말로만 들어도 한심한 그 풍경이. 태주가 나온걸 본 동철은 손을 흔들며 빨리 앉으라 재촉하였다. 옆에서 동철을 가만히 바라보던 태주는 통닭이 다 사라지자 입을 열었다. 

 

"진짜, 이게 뭐하시는겁니까."

"왜, 내가 내 애인 집에서 좀 있겠다는데 뭐가."

"아, 진짜...."

 

동철의 '애인'소리에 말문이 턱 막혀버린 태주는 화끈대는 얼굴을 감추려 서류가 널려있는 책상으로 몸을 가져갔다. 동철이 뒤에서 중얼대며 통닭을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열이 천천히 내려가는 얼굴을 느끼며 서류를 뒤적거렸다.

 

/

 

몸을 훽 돌려 서류를 뒤적이는 태주를 빤히 보던 동철은 자신이 먹어치운 통닭을 치웠다. 티비도 끄고선 가만히 책상 앞의 애인을 오랫동안 바라보다 구석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어왔다. 무슨 일인지 답지 않게 긴장한 동철의 손에서 자꾸만 땀이 삐질삐질 배어나왔다. 땀이 흥건한 손을 이불에 문지르며 머뭇거렸다. 목소리가 떨리게 나오지 않도록 무던히 노력하다 한참만에 나지막이 태주를 불렀다.

 

"태주야."

"..."

"야아-"

"..."

"여기좀 봐줘."

"싫습니다. 바빠요."

"아, 애인부탁인데 안들어줄거야?"

".....아 진짜, 뭔데요?"

 

태주는 몇번의 실랑이 끝에 못이기는 척 몸을 돌렸고, 동철이 내미는 것을 보고는 제 눈을 의심했다.

 

"계장님, 이게 대체 무슨-"

"거, 보면 모르냐? 야아 서울놈 머리 다 어디갔나~"

 

능청스레 태주를 비꼬는-사실은 속이 바짝 타들어가 마른 침을 삼키고있지만-동철이 태주에게 내민것은, 88년도 답지않게 세련되게 제작된, 곱게 반짝이는 반지였다. 놀라서 눈을 땡그랗게 뜬 태주를 멋쩍게 바라보던 동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최대한 이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맘에 안드냐? 거, 뭐냐, 다이아같은거는 못박아줘서 미안하다."

"가...갑자기 이걸 왜...."

"왜냐니, 그야 내일, 아니다 이제 오늘이구나. 오늘이 니녀석 생일이잖냐. 뭐, 태어나줘서 고맙고, 나랑 사귀어줘서 고맙다...그런 의미로,"

 

태주는 쑥스러움에 횡설수설하는 동철에게 다가와 와락 안겼다.

 

/

 

오늘이 생일이었는지도 몰랐다. 생일을 제대로 챙긴지 수년이 넘은 태주에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태주를 위해, 사랑하는 계장님이, 이런 큰 선물을 주다니. 태주는 이것이 현실인지 믿을 수가 없었다. 태주는 동철을 와락 껴안았다. 품에 안기는 저를 감싸는 이 온기는 꿈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저를 감싸고는 당황한 듯 어버버거리는 큰 몸뚱아리가 느껴졌다. 그것이 너무나도 웃겨 울었다. 그리고 너무도 행복해 울었다. 

 

/

 

동철은 어깨가 축축해지는 감각에 태주를 떼어냈다. 태주가 울고있었다. 맘에 안든건가,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흐르는 눈물을 조심스레 닦아주며 동철은 물었다.

 

"왜 울고 그래...혹시 맘에 안들어?"

 

태주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제 눈 앞에 들어찬 동철의 얼굴을 두손으로 잡고서는 입술을 맞대었다. 한참만에 입술을 떼고서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 생에서 가장 행복한 생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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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삼(@lifeonmars_san3)

​HAPPY BIRTH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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